급락일에 손절 주문을 냈는데 화면에 보이던 가격보다 한참 아래에서 체결된 경험이 있다면, 그것은 실수도 시스템 오류도 아닙니다. 호가창이 비어 있었기 때문입니다.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다가 급락장에서만 드러나는 이 구조를 알아두면, 같은 매도라도 훨씬 나은 가격에 처리할 수 있습니다.
우리가 "주가"라고 부르는 것은 마지막으로 체결된 가격입니다. 실제 거래는 호가창에서 일어납니다.
| 구분 | 가격 | 수량 |
|---|---|---|
| 매도 3호가 | 10,200원 | 500주 |
| 매도 2호가 | 10,150원 | 300주 |
| 매도 1호가 | 10,100원 | 200주 |
| — 현재가 10,050원 — | ||
| 매수 1호가 | 10,000원 | 250주 |
| 매수 2호가 | 9,950원 | 400주 |
| 매수 3호가 | 9,900원 | 600주 |
내가 시장가로 1,000주를 팔면 어떻게 될까요? 매수 1호가에서 250주, 2호가에서 400주, 3호가에서 350주가 체결됩니다. 평균 체결가는 10,000원이 아니라 그보다 낮습니다. 이 차이를 슬리피지라고 합니다.
위 표는 평상시 모습입니다. 급락장에서는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납니다.
| 거래대금 큰 대형주 | 거래대금 작은 중소형주 | |
|---|---|---|
| 평상시 호가 두께 | 두꺼움 — 각 호가에 많은 수량 | 얇음 — 몇십 주씩만 걸려 있기도 |
| 호가 간격 | 촘촘함 | 띄엄띄엄 |
| 급락 시 슬리피지 | 상대적으로 작음 | 매우 큼 — 한 번의 주문으로 수 % 밀릴 수 있음 |
그래서 같은 급락일이라도 대형주와 중소형주에서 체감하는 "팔기 어려움"이 전혀 다릅니다. 중소형주는 내 주문 자체가 가격을 만드는 상황이 됩니다.
시장가 주문은 "가격은 상관없으니 지금 즉시 체결해 달라"는 지시입니다. 평상시에는 편리하지만 급락장에서는 가격 통제권을 완전히 포기하는 주문입니다.
특히 위험한 조합이 몇 가지 있습니다.
ETF는 실제 자산 가치(순자산가치)와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이 따로 있습니다. 평상시에는 거의 붙어 있지만, 급변동 구간에서는 괴리율이 커질 수 있습니다. 특히 레버리지·인버스 상품이나 해외 지수를 추종하는 ETF에서 두드러집니다.
이 상황에서 시장가로 사면 실제 가치보다 비싸게 살 수 있습니다. ETF 매매 시 호가창과 함께 괴리율을 확인하는 습관이 도움이 됩니다.
서킷브레이커와 사이드카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. 매매를 잠시 멈추면 그동안 매수 주문이 다시 쌓입니다. 호가창이 채워진 상태에서 거래를 재개하면, 같은 매도 물량이라도 훨씬 덜 밀립니다.
발동은 나쁜 신호지만, 발동 직후 재개 구간은 호가가 회복된 상태라는 뜻이기도 합니다. 급하게 팔아야 한다면 공백 구간보다는 재개 이후가 낫습니다.
급락장에서 좋은 판단을 내렸는데도 결과가 나쁜 경우, 그 차이의 상당 부분이 여기서 발생합니다. 무엇을 팔지 정하는 것만큼 어떻게 팔지도 결과를 바꿉니다.